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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4.07.21
조회수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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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제61주기 베티고지 전투 육탄용사 추모식
베티고지 전투에 참여했던 육탄용사를 추모하는 행사가 임진강변 육군 제28보병사단의 태풍전망대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진삼(전 육군참모총장)을 비롯하여 김정남 장군(전 육사교장) 등 장군 및 영관급 장교출신과 참전용사, 보병 제1사단 장병 및 주한미군45명과 참전 태국군(UN군)을  추모하기 위하여 태국군 특 대령 및 장병들도 참석하여 성대하게 거행하였다.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 소위(이사화물협회 김삼술 감사 형님)
베티고지의 신화적인 승리를 이끈 김만술 소위는 1947년6월 육군에 입대를 하여 특무상사 중화기중대에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여수 순천 사건 진압작전, 평양탈환작전 등 전장을 누비던 전장의 베테랑으로 불렸다.
이후 현지 임관시험을 치러 소위로 임관하고 1953년 제1사단 제11연대 제7중대 제2소대장을 맡게 된다.
휴전협정 후인 1960년 대위로 예편한 이후 대한상이군경회 이사로 활동하는 등 생활을 하다 1991년5월28일 62세의 나이로 자신과 함께 싸워준 부하들 곁으로 떠났다(동작동 국립 현충원 안장)


베티고지 전투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이던 1953년7월14일~15일까지 서부전선(임진강 근처)에서 대한민국 육군과 중공군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이 전투로 베티고지는 사수하였지만 휴전협상 후 북한으로 편입되었다.

개요
베티고지는 임진강 근처에 있는 요충지이다.
만약 베티고지가 적에게 점령당한다면 제2군단의 방어선이 그대로 노출됨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고지를 점령하지 못하고 휴전을 한다면, 약 2마일 정도 뒤로 물러나서 비무장지대가 되기 때문에 연합군에게는 군사, 지리적으로 매우 불리하게 된다.
연합군에서는 베티고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김만술 소위의 대대에게 베티고지 사수를 명한다.

전설의 시작
김만술 소위는 소대장에 임명되어 얼굴도 미처 익히지 못한 소대원 35명을 이끌고 숨막히는 지옥의 고지로 향하였다.
아군은 참호를 파고 방어전선을 구축하였고, 중공군은 우세한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을 폈다.
아군의 전차 등은 날씨로 인해 고지로 지원을 못가는 상황이었다. 이에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이었다.
19번이나 주인이 바뀌며 싸운 베티고지 전투는 결국 김만술 소위가 이끄는 국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김만술 소위는 살아남은 12명의 부하와 함께 중공군의 시체를 헤아려 보니 사망자가 무려 350여명이라고 한다.
열세의 상황에서 필사 항전하여 사수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나, 이 전투에서 24명이 전사하였다.
전투 후 살아남은 이강로 하사는 충무무공훈장, 김순규 중사, 김흥규 중사는 화랑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김만술 소위는 휴전협정 후 1954년2월12일 한국인 최초로 미국 십자훈장을 수여 받았고 7월6일 금성태극무공훈장을 수여 받았다.  (사진 3은 헌화하는 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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